여행은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이다. 한편 익숙함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고, 미처 알지 못했던 내면의 감각을 깨우는 것 역시 여행이 주는 묘미다. 브로츠와프는 바로 이런 ‘새로운 발견’의 매력이 가득한 도시다. 오랜 시간 쌓아온 지성과 예술, 유쾌한 저항 정신을 따라가는 여정에서 이 도시의 진면모를 오롯이 경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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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츠와프 구시가지 중앙에 위치한 리네크 광장. 유럽 내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여행은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이다. 한편 익숙함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고, 미처 알지 못했던 내면의 감각을 깨우는 것 역시 여행이 주는 묘미다. 브로츠와프는 바로 이런 ‘새로운 발견’의 매력이 가득한 도시다. 오랜 시간 쌓아온 지성과 예술, 유쾌한 저항 정신을 따라가는 여정에서 이 도시의 진면모를 오롯이 경험할 수 있었다.
강물 따라 낭만이 흐르는 도시
하늘에서 내려다본 대성당 섬. 브로츠와프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이자 다양한 종교 건축물이 모여 있는 곳이다.
폴란드 남서부에 자리한 브로츠와프(Wrocław)는 수도 바르샤바나 소금 광산으로 유명한 크라쿠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도시다. 2023년 인천~브로츠와프 직항 노선이 개설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 도시를 처음 알게 됐으니, 여행 내내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듯 기분 좋은 긴장감이 맴돌았다.
브로츠와프는 12개 섬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도시다. 오데르강이 도심을 가로지르며 도시를 여러 갈래로 나누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섬과 섬 사이로 다리가 130여 개나 놓여 있다. 수많은 섬과 다리가 빚은 풍경 덕에 ‘폴란드의 베네치아’라고도 한다.
오데르강과 그 지류가 만든 독특한 경관은 브로츠와프의 가장 큰 매력이다. 멀리서 보면 도시 전체가 푸른 실타래로 엮인 듯 장관을 이루고, 가까이서 마주한 강물은 고요히 흐르며 도시 곳곳으로 흩어진다.
여러 섬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곳은 오스트루프 툼스키(Ostrów Tumski), 이른바 대성당 섬이다. 브로츠와프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으로 성 요한 대성당을 비롯해 성 십자가 교회, 성 마틴 교회, 대주교 궁전 등 다양한 종교 건축물이 자리한 역사적인 곳이다. 성 요한 대성당은 브로츠와프의 상징이자 폴란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딕양식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힌다.
13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지어진 성당은 높이 솟은 아치형 천장과 거대한 기둥, 정교한 플라잉버트레스(공중 부벽) 등 고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성당 내부는 장엄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오색 빛이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시간마저 멈춘 듯한 경건함에 압도되는 느낌이다.
툼스키 다리(Tumski Bridge)는 대성당 섬과 육지를 잇는 상징적인 다리다. 난간에 사랑을 약속하는 자물쇠를 걸어 두는 전통이 있어 ‘사랑의 다리’라고도 한다. 이 다리가 더욱 특별한 건 브로츠와프에서 유일하게 가스등이 설치된 곳이기 때문이다. 어둑해질 무렵이면 검은 망토를 입은 점등인이 나타나 가스등 불을 밝히는 이색 풍경을 볼 수 있다.
옛 방식으로 가스등에 불을 붙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시공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강으로 둘러싸인 안온한 섬과 사랑이 넘치는 다리, 예스러운 가스등까지 브로츠와프의 밤은 낭만 그 자체다.
대성당 섬과 육지를 잇는 툼스키 다리. 난간에 사랑을 약속하는 좌물쇠를 걸어두는 전통이 있어 ‘사랑의 다리’라고도 한다.
역사와 미식의 향연
폴란드 전통 요리 골론카는 우리나라 족발과 비슷한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우면서 쫄깃하다.
브로츠와프의 심장인 구시가지는 다양한 건축양식과 역사,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져 최고의 도보 여행지로 꼽힌다. 마치 중세 시대의 그림책 속으로 들어선 듯 아름다운 풍경에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진다.
구시가지 중앙에 위치한 리네크(Rynek), 즉 도시 광장은 유럽 내에서도 손꼽히는 크기를 자랑한다. 거대한 직사각형 광장 주변에는 다채로운 파스텔 톤의 아름다운 건물이 촘촘히 늘어서 있다. 핑크색, 노란색, 민트색 등 색과 모양이 각기 다른 건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브로츠와프만의 독특한 풍경을 완성한다.
광장 중심에는 웅장한 시청사가 위엄을 뽐내며 자리한다. 높이 솟은 첨탑과 정교하게 장식된 외벽, 다양한 조각상과 천문시계 등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자 700년 역사를 품은 기념비적인 건물이다.
13세기 초 목조건물로 시작해 여러 차례 증축과 개축을 거치면서 시대별 다양한 양식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게 특징이다. 광장의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도 시청사는 도시의 역사적 중심이자 굳건한 상징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현재 시립박물관으로 운영 중인 시청사 지하에는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 피브니차 시비드니츠카(Piwnica Swidnicka)가 있다. 작곡가 쇼팽과 작가 괴테 등 수많은 유명인이 방문해 담소를 나누고 식사를 즐긴 곳으로 유명하다.
시청사의 역사만큼 전통이 오래된 레스토랑에서는 특유의 아늑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폴란드 전통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절인 양배추에 고기와 버섯, 양파 등 각종 재료를 넣고 오래 끓이는 비고스(Bigos), 만두와 비슷한 모양으로 감자와 치즈, 고기 등을 넣어 빚은 피에로기(Pierogi)는 꼭 맛봐야 할 폴란드 대표 요리다.
또 폴란드식 족발 골론카(Golonka)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우면서 쫄깃한 식감이 매력이다. 여기에 유럽 3위 맥주 생산국인 폴란드산 맥주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과거 이곳을 찾은 수많은 예술가와 학자의 일상에 스며드는 듯한 특별한 미식 경험을 완성해준다.
동화책을 편 듯 다채로운 파스텔 톤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브로츠와프만의 독특한 풍경이다.
쇼팽과 괴테 등 수많은 유명인이 방문했던 피브니차 시비드니츠카는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이다.
중세부터 이어진 예술과 지성의 요람
오데르강을 배경으로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브로츠와프 대학교. 1702년 설립되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대학이다.
브로츠와프는 지성과 학문의 도시로 명성이 높다. 중세 시대부터 중부 유럽의 교육 요충지였으며, 그 중심에 브로츠와프 대학교가 있다. 1702년 신성로마제국 레오폴트 1세 황제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중앙 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대학이다. 교육기관으로서도 훌륭하지만, 건축학적 가치도 매우 뛰어나 문화유산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구시가지 북쪽에 위치한 브로츠와프 대학교는 시청사에서 도보로 15분 남짓 걸린다. 아름다운 중세 시대 건물 사이를 산책하듯 걷다가 오데르강이 시야에 들어올 때쯤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여러 대학 건물 중 가장 유명한 본관은 바로크양식의 고풍스러운 외관과 섬세한 장식이 돋보이는 건물이다. 특히 푸른 강물에 비친 아름다운 모습은 브로츠와프의 상징적인 풍경이기도 하다.
본관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레오폴디나 강당(Aula Leopoldina)이다. 후기 바로크양식의 대표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곳은 대학의 중요한 의식이나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당대 유럽 최고의 예술가들이 완성한 천장과 벽면 가득 화려한 프레스코화와 정교한 조각품이 어우러져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 신화와 종교, 학문을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은 지성과 예술이 어우러진 경이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현재 본관은 박물관으로 운영 중이며, 공간의 역사와 예술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싶다면 가이드 투어를 추천한다.
후기 바로크양식의 대표 걸작으로 평가받는 레오폴디나 강당. 화려한 프레스코화와 정교한 조각품은 당대 유럽 최고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작은 거인, 난쟁이와 유쾌한 동행
도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난쟁이 동상. 1980년대 오렌지 대안 운동에서 비롯된 문화유산이다.
브로츠와프의 역사와 정신이 깃든 난쟁이 동상은 각자의 위치에서 고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유머와 웃음을 선사한다.
예상치 못한 만남은 더욱 특별한 법. 광장의 복잡한 인파 속에서, 오래된 건물의 돌담 틈에서, 혹은 길모퉁이 카페 앞에서 예고 없이 불쑥 나타나는 존재는 다름 아닌 난쟁이 동상이다. 청동으로 만든 이 작은 조각상의 이름은 폴란드어로 난쟁이를 뜻하는 ‘크라스날레(Krasnale)’. 대부분 크기가 20~30cm로 발목 높이에 불과해 두 눈을 크게 뜨고 살펴야 발견할 수 있다.
덕분에 보물찾기라도 하듯 도시 곳곳을 탐험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작고 귀여운 난쟁이를 발견할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굽혀 표정을 살피는 모습은 이곳에서 익숙한 풍경이다. 구시가지를 포함해 브로츠와프 전역에 난쟁이 동상이 약 600개 있다. 독서하는 난쟁이, 기타를 연주하는 난쟁이, 맥주 마시는 난쟁이 등 각기 다른 모습과 표정을 짓고 있어 마치 브로츠와프 시민의 삶을 축소해놓은 듯 생생하다.
난쟁이 동상이 특별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1980년대 폴란드 공산주의 정권에 저항한 ‘오렌지 대안(Orange Alternative) 운동’에서 비롯된 유산이기 때문이다. 당시 폴란드는 소비에트연방의 영향권 아래 있던 공산주의 국가였다. 정치적·경제적으로 매우 암울하고 군사 정부의 계엄령 아래 억압받던 폴란드에서 브로츠와프의 예술가와 시민은 폭력적 저항 대신 유머와 예술, 비폭력의 힘을 택했다.
대표적 활동이 난쟁이 그라피티로 정부가 반체제 구호를 덧칠해 지우면, 그 위에 난쟁이 그림을 덧그리는 방식으로 체제에 대한 풍자와 저항을 이어갔다. 이 유쾌한 저항은 암흑 같던 시절 폴란드 시민에게 웃음과 희망을 선사했고, 비폭력 저항의 상징인 난쟁이는 시간이 흘러 도시 곳곳에 청동 조각상으로 자리 잡았다. 작은 난쟁이 동상은 브로츠와프의 상징이자,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폴란드인의 정신 그리고 유머와 예술을 통한 평화로운 저항의 역사를 증언하는 특별한 존재인 셈이다.
오늘날 브로츠와프의 난쟁이 동상은 각자의 위치에서 고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학교 앞 독서 중인 난쟁이는 지성의 중요성을, 소방관 난쟁이는 공동체를 위한 봉사의 의미를, 하트를 든 난쟁이는 시민을 향한 애정을 전한다. 기념품점 앞에는 선물 상자를 든 난쟁이가 손님을 반기고, ATM기 앞에는 금고를 지키는 난쟁이가 자리하며 웃음을 선사한다. 난쟁이 동상을 발견하는 일은 이 도시가 지닌 역사와 정신을 이해하고, 유머와 예술로 역경을 극복한 긍정 에너지를 오롯이 느끼는 특별한 경험이다.
참고로 브로츠와프에서는 난쟁이 동상의 위치 정보를 제공한다. 관광 안내소의 종이 지도, 공식 관광 웹사이트(visitwroclaw.eu), 난쟁이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찾아볼 수 있다. 난쟁이 동상을 발견하는 기쁨과 이들이 선사하는 즐거움이 브로츠와프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이 콘텐츠의 원문은 GOLD&WISE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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