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 넘게 공사 중인 가우디의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대성당)가 완공을 앞두고 있다. 가우디 서거 100주년이 되는 2026년이 완공 목표다. 지난해 10월 성당 중앙탑 6개 중 5개가 완공됐다는 뉴스가 보도됐을 정도로 성당과 관련된 소식은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끈다.
한 번이라도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이 낯선 건축물을 조우했을 때의 감격을 쉽게 잊을 수 없다. 낮은 건물 사이, 저 멀리 건축과 장식의 구성 요소, 조형미, 기능과 형태, 외부와 내부 사이에 완벽한 조화를 추구한 장엄한 성당이 주는 감동은 가까이 갈수록 점점 커지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서 절정에 다다른다.
입구와 첨탑을 장식한 조각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제작해 색도, 만든 사람도, 스타일도 조금씩 다르지만 섬세한 디테일과 종교적 스토리텔링은 무신론자에게도 감동으로 다가온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한 빛으로 알록달록 물든 성당 안은 숲속 같다. 묵직한 기둥에서 퍼져 나가는 가지는 튼튼한 나무 같아 천고가 높은데도 안온한 느낌이 든다.
가우디는 31세라는 어린 나이에 성당 건축의 총감독에 임명됐다. 건축학교를 졸업한 지 불과 5년밖에 되지 않았기에 파격적인 일이었다. 1882년 시작된 공사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새로운 건축가 가우디에게 맡겨졌고, 그는 가장 먼저 전임자였던 비야르의 설계도부터 폐기하고 새로운 형식의 도면을 그렸다.
예수의 탄생부터 죽음과 부활에 이르는 기적과 열두 사도의 상징물을 표현하고자 했다. 북쪽을 제외한 동, 서, 남쪽에 ‘탄생’, ‘수난’, ‘영광’을 주제로 한 파사드 3개를 만들고, 각각 4개씩, 12개의 탑을 세우는 거대한 계획이다. 가우디는 생전 이 공사가 약 200년이 걸릴 것이라 예상했고, 그는 25% 정도만 완성할 수 있었다.
공사는 고질적인 자금난 때문에 더디게 진행됐다. 하지만 그때마다 가우디는 꾸준히, 성실하게 작업에 매진했다. 세상을 떠나기 8개월 전에는 구엘 공원에 있던 집을 두고 성당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의 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가우디의 하루는 ‘아침 미사, 성당 작업, 산책, 고해성사’로 이뤄졌을 만큼 단조로웠다.
1926년 6월 7일, 일을 마치고 성당을 나선 가우디는 교차로에서 전차에 부딪쳤다. 허름한 행색 탓에 아무도 그가 대성당을 짓는 건축가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는 세상을 떠났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하의 카르멜 예배당에 묻혔다. 자연을 사랑한 천재 건축가의 뚜렷한 신념이 깃든 유산은 도시 곳곳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다. 곧 완공될 가우디의 마지막 작품만으로도 여행을 떠날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