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고 위대하게, 산드로 보티첼리

25.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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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티첼리'가 애틋한 마음을 품었다고 알려진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초상이다.

보티첼리가 애틋한 마음을 품었다고 알려진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초상.

위대한 작가는 작품으로 모든 것을 보여준다.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렇다. 그는 작업 방식이나 당대 입지, 생활상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 작품 의뢰서와 주변 화가의 증언, 후대 미술평론가의 불분명한 평론만으로 그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작품을 통해 은근슬쩍 사생활을 드러낸다. 어디에서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어떤 환경에서 작업했는지, 삶의 변곡점이나 사상의 변화, 성격도 작품으로 짐작할 수 있다. 너무나 유명하지만 알수록 수수께끼 같은 작가, 보티첼리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본다.

잠들었던 이름, 보티첼리

19세기까지만 해도 보티첼리는 비판적 시선을 받았다. 르네상스를 이끈 대작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이 주목받을 때, 보티첼리 작품은 원시적이고 중세적이며 미숙하다고 평가받았다.

바티칸의 부름을 받을 만큼 소위 ‘잘나가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하고, 1490년대부터 과거로 회귀한 듯 중세 시대 고딕미술 화풍을 좇았다. 1500년 이후로는 작품도 거의 남기지 않아 서서히 잊혔다.

 

화가이자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는 『미술가 열전』에서 보티첼리의 말년에 대해 “일도 못하고 똑바로 설 수도 없어 목발을 짚고 다니다가, 병들고 노쇠해져 세상을 떠났다”라고 표현했다. 그가 쓴 기록에는 오류도 있지만, 보티첼리에 대해 그만큼 자세히 기록한 평론가가 없기에 중요한 참고서로 여겨진다.

보티첼리가 재조명받은 건 1860년대 들어서다.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보티첼리 작품이 공개되고, 유럽 전역의 미술관에서 관심을 보이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영국에서 그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1875년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 ‘비너스와 마르스’가 오르자, 당시 영국 총리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관심을 내비쳤을 정도다. 그 영향으로 ‘비너스와 마르스’는 영국 공공미술관인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낙찰받았다.

1870년대 영국 예술 평론가 존 러스킨의 공도 있다. 그는 “몸에 밴 세련된 매너, 학문적 깊이에 바탕을 둔 조리 있는 말투가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이었다. 그리고 보티첼리는 그런 시대정신에 깊이 영향받은 인물이었다”라며 보티첼리를 집중 탐구했다.

 

그는 심지어 보티첼리를 비운의 사랑꾼으로도 묘사했다. ‘비너스의 탄생’과 ‘비너스와 마르스’, ‘어느 부인의 초상’ 등에 모델로 등장한 시모네타 베스푸치를 보티첼리가 짝사랑했다는 것. 시모네타는 보티첼리를 적극 후원한 베스푸치가의 며느리였다. 아름다운 외모와 따뜻한 인품을 지녔고, 보티첼리의 실력을 높이 샀으며 우호적이었다.

 

여기에 스물두 살의 어린 나이에 요절한 스토리가 더해져 시모네타는 ‘불운한 예술가’에게 사랑받은 인물로 기억되었다. 보티첼리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감히 범접할 수 없어, 그녀를 주인공으로 그리며 마음을 달랬다고 전해진다.

보티첼리 작품은 가치와 진위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직접 기록하지 않아 어떤 작품을 어떻게 그렸는지, 모델이 누구였고 왜 그렸는지 전해지는 바가 없어서다. 미술상과 명문가의 작품 의뢰서로 확인하거나, 일관된 구도와 작화 방식으로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오늘날까지 진위 논쟁이 분분한 작품도 있다.

 

1465년경 작품으로 추정되는 ‘동방박사의 경배’, 1467년 작 ‘외랑(外廊)의 성모’, 1470년경 완성한 ‘젊은 남자의 초상’, 14751480년 완성한 ‘붉은 모자를 쓴 젊은 남자의 초상’ 등 초창기 작품은 최근까지도 보티첼리 작품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었다. 보티첼리를 추종한 1516세기 작가가 많은 만큼 모작이 여러 점 전해지는 것도 진품 논란을 일으킨 원인이다.

 

일례로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비너스와 마르스’를 낙찰받을 당시 함께 구입한 ‘알레고리’가 있다. 당시에는 그의 작품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훗날 물감 분석과 적외선 촬영 등을 통해 진품이 아닌 15세기 말~16세기 초 보티첼리 추종자의 작품으로 판명났다.

스승을 뛰어넘은 제자

스승 프라 필리포 리피가 그린 ‘성모자와 두 천사(Madonna col Bambino e due angeli)’이다.

보티첼리가 그린 '어린 성 세례 요한과 함께 있는 성모자(Madonna and Child with the Young St. John the Baptist)'이다.

스승 프라 필리포 리피(왼쪽)와 보티첼리(오른쪽)가 각각 그린 성모자. 어린 예수가 손을 뻗는 모습, 프레임 밖을 응시하는 천사의 시선, 낮은 곳을 바라보는 성모의 시선 등 유사한 점이 많다.

대략 1463~1467년 보티첼리는 프라 필리포 리피 아래서 수학했다. 그는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는, 당대 가장 성공한 화가였다. 보티첼리는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제자였으리라 짐작한다. 리피와 보티첼리 초기 작품은 유사한 점이 많다.

 

리피 작품의 특징으로 사실적 구성과 능숙한 원근법이 꼽힌다. 1465년경 큰 인기를 누린 리피의 ‘성모자와 두 천사’를 보티첼리도 따라 그렸다. 두 작가의 작품은 인물 배치와 자세가 유사하다. 단, 1465년 이후 보티첼리가 그린 ‘성모자와 두 천사’ 시리즈는 사뭇 다른 유형을 보인다. 옷 주름과 선이 한층 정교하고, 배경 표현이 풍성해졌다.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영향을 받은 듯한 흔적도 있다. 베로키오 작업장은 1470년대 전후 작품을 가장 활발하게 만든 공방이었다. 유명 작가가 젊은 작가와 함께 작품을 완성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베로키오 작업장의 대표작이자 문제작으로 ‘그리스도의 세례’가 꼽힌다.

 

베로키오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작품을 완성했다고 전해지는데, 몇몇 미술평론가는 보티첼리도 함께했다고 주장한다. 이 시기부터 보티첼리는 인물 뒤에 창이나 담장 밖 정원을 표현했다. 1469~1470년 완성한 ‘성모자와 두 천사’, 1468년경 작 ‘장미정원의 성모’가 대표적이다.

 

배경에 창조한 별개의 장면은 원근감을 표현하는 도구이자 인물을 설명하는 장치다. 가령 ‘장미정원의 성모’는 성모마리아의 상징적 도상인 장미를 그대로 표현해 성모의 존재를 부각한다.

신화의 현신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와 마르스'이다.

보티첼리의 대표작 ‘비너스와 마르스’는 우측 상단에 그려진 말벌을 근거로 당대 유력 가문인 베스푸치가를 위해 그렸다고 전해진다.

보티첼리는 1470년부터 독자적으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화풍을 다졌다. 특히 피렌체를 대표하는 명문가 메디치가와 베스푸치가의 주문을 받거나 그들의 사상과 신념의 영향을 받아 작품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대표작으로는 1475년에 그린 ‘동방박사의 경배’가 있다. 메디치 가문을 향한 충성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해석되는 작품이다.

 

작품을 의뢰한 이는 메디치 가문과 거래하던 환전상 겸 중개상 가스파레 디 차노비 델 라마. 그는 메디치가에 대한 자신의 헌신을 표현하고자 보티첼리에게 작품을 의뢰했고, 완성된 작품을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에 봉헌해 가문의 위상을 높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꼽히는 보티첼리의 대표작도 당대 명문가와 연관이 깊다고 전해진다. ‘봄의 우의’의 배경에는 메디치가의 상징인 오렌지나무와 월계수가 등장한다. ‘팔라스와 켄타우로스’의 주인공 또한 독특한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고 월계관을 쓰고 있는데, 이 역시 메디치가의 상징이다.

온화한 모습으로 마르스를 바라보는 사랑의 신 비너스, 마음 편히 잠든 전쟁의 신 마르스, 장난기 넘치는 어린 사티로스가 함께 등장하는 ‘비너스와 마르스’ 역시 예로 들 수 있다. 혼절한 듯 쉬는 마르스의 머리 위에 말벌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어로 말벌을 뜻하는 ‘베스파(Vespa)’는 베스푸치 가문을 자연스레 연상시킨다.

 

이를 근거로 베스푸치가의 결혼식을 위한 작품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봄의 우의’와 ‘비너스와 마르스’, ‘팔라스와 켄타우로스’ 모두 고대 로마 신화를 재해석한 동시에 유력 인사의 상황과 입장을 반영한 작품으로 보인다. 치밀한 계산 속에서 탄생한 작품은 오늘날까지 연구 과제로 여겨진다.

 

단, ‘비너스의 탄생’은 1530~1540년경 메디치가 소유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이전 재산 목록에는 포함되지 않아 호기심을 일으킨다. 정확한 제작 시기뿐 아니라 작품 의뢰자, 용도도 알려지지 않아 신비감을 더한다.

보티첼리 대표작 탐구

성모상의 화가

보티첼리가 그린 ‘찬가의 성모(Madonna of the Magnificat)’이다.

1470년경부터 1480년대까지, 보티첼리는 스승 프라 필리포 리피의 영향으로 성모상과 아기 예수 작품을 그렸다. 초기작은 스승의 작품과 거의 같았지만, 작업을 거듭할수록 독자적 요소를 반영해 자신만의 고유 작품을 탄생시켰다.

 

성모상과 아기 예수의 시선, 자세, 의상 스타일은 유사하지만, 모자의 애틋한 포옹을 천사가 축복하거나 아기 예수의 팔목에 걸린 면류관으로 고난의 미래를 암시하는 등 작품마다 다른 내용을 담았다. 성모상 시리즈 정점은 ‘찬가의 성모’다.

 

성모마리아가 대관식을 치르며 찬가를 짓는 장면이다. 원형의 프레임으로 완성한 작품은 오목거울로 압축한 듯한 착각을 일으키며 시선을 집중시킨다. 인물의 온화한 표정, 부드러우면서 화사한 색감 등은 사실적이면서도 신비감을 극대화한다.

동방박사의 경배

보티첼리가 그린 ‘동방박사의 경배(Adoration of the Magi)’이다.

보티첼리는 평생에 걸쳐 ‘동방박사의 경배’를 여러 점 그렸다. 작품은 시리즈를 거듭하며 완성도도 높아졌다. 황금기인 1481년경 작품은 풍부한 색감과 분명한 구심점이, 원숙기인 1500년경 작품은 단순화한 배경과 동시대 화풍을 반영한 점이 돋보인다.

‘동방박사의 경배’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중개상 가스파레가 메디치가를 위해 주문한 그림이다. 이 작품은 보티첼리가 세 번째로 그린 것으로, 전체적 완성도뿐 아니라 인물에 대한 해석이 흥미롭다.

 

작품에서 아기 예수를 대면하는 이는 메디치가의 전 수장이자 피렌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코시모 데 메디치, 그의 오른쪽 아래 붉은 망토를 걸친 이는 코시모의 아들 피에로, 그 옆에 고개를 뒤로 돌린 이는 코시모의 또 다른 아들 조반니다. 작품의 가장 왼쪽에서 칼을 쥐고 선 이는 코시모의 손자, 즉 피에로의 아들이자 현 수장 로렌초다. 로렌초의 곁에는 메디치 궁정의 인문학자들이 자리한다.

작품 오른쪽 인물들도 시선을 끈다. 맨 뒷줄 가운데에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흰머리 노인은 작품 의뢰자인 가스파레다. 그리고 오른쪽 가장자리에서 우리를 응시하는 이가 보티첼리 자신이다. 그는 이 밖에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는 문인과 화가도 다수 등장시켰다.

작품의 핵심 인물은 왼쪽 가장자리에서 가슴을 펴고 당당히 서 있는 로렌초다. 보티첼리는 가문을 위기에서 구한 인물로 로렌초를 묘사했고,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삼촌을 신성화함으로써 가문의 입지와 중요성을 부각했다.

봄의 우의

보티첼리가 그린 '봄의 우의(Primavera)'이다.

‘봄의 우의’는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가 지은 제목으로, 원이름은 알 수 없다. 바사리는 『미술가 열전』에서 이 작품이 ‘비너스의 탄생’과 함께 피렌체 외곽 도시 카스텔로의 메디치가 별장에 소장되었다고 기록했다. 작품은 1815년 우피치 미술관, 1853년 아카데미아를 거쳐 1919년 다시 우피치 미술관에서 소장하게 되었다.

 

작품 경로는 분명히 기록되어 전해지지만, 작품의 의뢰자나 용도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메디치가 일원인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의 저택에서 소파 겸 침대 등받이 위를 장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의 결혼을 위해 그렸다는 설이 유력하다.

작품의 해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봄날의 사랑과 결혼을 암시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가운데 선 비너스는 양옆 인물보다 한발 물러서 있으면서도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왼쪽의 세 여신은 비너스의 수행자이자 각각 순결, 사랑,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존재.

 

왼쪽 가장자리 남성은 전령의 신이자 정원의 수호자 헤르메스로, 지팡이를 휘둘러 구름을 쫓아내는 중이다. 비너스의 머리 위에는 큐피드가 있다. 큐피드는 세 여신 중 가운데 위치한 순결의 여신을 향해 화살을 겨누고 있다. 순결의 여신은 헤르메스를 응시하고 있어 사랑에 빠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비너스 오른쪽에 선 두 여인은 같은 인물로,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가장 오른쪽 인물은 바람의 신 제피로스다. 제피로스가 요정 클로린스를 강제로 범하자 클로린스는 비명을 지르는데, 입에서는 목소리 대신 장미꽃만 쏟아져나온다.

 

제피로스는 이내 잘못을 뉘우치고, 클로린스를 봄의 여신이자 부귀영화의 상징인 플로라로 변신시켜 모든 꽃을 주관하게 했다. 이 장면은 오비디우스의 장편시 ‘변신 이야기’를 그대로 묘사했다. 여담으로, 그림 속 플로라는 보티첼리가 연모했다고 알려진 시모네타 베스푸치를 모델로 삼았다.

비너스의 탄생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이다.

제작 시기도, 후원자도, 계기도 알려지지 않아 신비로운 작품이다. 메디치가 자손의 탄생을 축하하는 작품이라는 설, 피렌체의 부흥을 상징하며 그렸다는 설, 결혼식을 표현했다는 설 등이 전해지지만 근거는 미약하다. 그저 조르조 바사리의 증언과 메디치가의 소장품 목록을 바탕으로 1540년경부터 ‘봄의 우의’와 함께 메디치가 별장에 있었다는 점만 알려졌다.

작품명 ‘비너스의 탄생’도 1900년대 붙여진 이름으로 원래 제목은 기록된 바가 없다. 심지어 내용도 맞지 않는다. 작품은 비너스가 탄생한 뒤 시간이 지나 키프로스섬에 도착하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작품 배경이 되는 신화에 따르면, 비너스는 바다의 물거품에서 태어났다.

 

농경의 신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라노스의 성기를 잘라 바다에 버리자 거품이 일었는데, 그 속에서 비너스가 탄생했다. 이후 비너스는 수면 위를 떠돌다 바람의 신 제피로스의 입김에 실려 키프로스섬에 다다른다. 꽃의 여신 플로라는 붉고 화려한 천으로 비너스를 맞이한다. 제피로스를 껴안은 여성은 플로라로 변하기 전의 클로린스, 혹은 산들바람의 여신 아우라를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작품의 유래나 해석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수채화처럼 투명한 색채 표현이나 섬세하고 다채로운 꽃 문양, 비너스의 우아한 인체와 성스러운 분위기 등 요소 하나하나가 감동과 전율을 일으킨다.

이 콘텐츠의 원문은 GOLD&WISE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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