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 다가온 월세 시대… 주택시장에 무슨 일이 생길까

2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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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탑 위에 ‘집모형’이 있다. 빨간색 지붕, 파란색 지붕 집이 놓여있다. 그것을 돋보기로 확대하여 보는 구도이다.

외국인이 바라볼 때 우리나라는 ‘아파트 공화국’이지만 한편으로는 ‘전세 공화국’이기도 하다. 전 세계를 둘러봐도 한국처럼 전세 제도가 일반화되어 있는 나라는 드물다. 우리나라 세입자가 선호하는 임차 유형으로도 전세가 월등하게 높다.


실제로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지난해 5,000가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전체의 80.5%가 전세를 희망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간다. 요즘은 전세살이보다 월세살이하는 사람이 더 많다. 목돈이 없는 2030세대일수록 월세 비중이 더 높다. ‘월세는 길바닥에 돈을 뿌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월세에 거부감이 강했던 고령 세대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주택 월세화 속도가 매섭다. 올해 들어 전체 임대차 계약 중 월세 비중이 60%를 넘어서면서 임대차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해외 선진국에서 보편화한 월세살이가 이제 우리 앞으로 성큼 다가온 셈이다.

월세화 속도가 왜 가파를까

첫째, 최근의 월세화는 전셋값 급등의 후폭풍으로 나타난 것 같다. 말하자면 전세가격이 크게 오르니 월세로 임대료 일부를 지급하는 세입자가 늘어난 것이다. KB부동산 시세에 따르면, 7월 현재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2년 전보다 10.5% 올랐다.


세입자는 다른 집으로 옮기기보다 5%만 인상하고 2년 더 거주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하는 편이 유리하다. 재계약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집주인이 인상된 금액을 월세로 받으려고 한다. 보증금을 받아 은행에 예치하는 것보다 수익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 조사 결과 전세보증금을 월세로 바꿀 때 적용하는 이율인 전월세 전환율이 서울 아파트 기준 연 4.7%(전국 5.3%)에 이른다.


시중은행 1년짜리 정기예금(연 2.49%)보다 훨씬 높은 셈이다. 세입자도 보증금을 올려주는 게 저렴할 수 있지만, 집주인이 후순위 대출을 받은 경우가 있어 선뜻 내키지 않는다. 즉 집주인의 경제적 이득뿐 아니라 세입자의 위험 회피 심리도 월세화를 재촉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둘째, 빌라 전세 사기는 월세화 현상에 메가톤급 영향을 미쳤다. 전세는 공간을 빌리는 대가로 집주인에게 사적으로 목돈을 빌려주는 사금융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빌라 전세 사기 여파로 비(非)아파트 시장에서 전 재산을 잃은 세입자가 늘어나면서 전세 기피 현상이 확산되었다.


그래서 전세보증보험을 통해 빌라 전세를 계약하기도 하지만, 아예 월세살이를 선택하는 세입자가 많아진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빌라 전세 수요는 그나마 깡통 전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아파트로 이동했다. 이 같은 아파트 전세 쏠림 현상은 깡통 전세 트라우마에 따른 생존 본능이 작동한 결과다. 문제는 아파트 전세로 이사하려고 해도 가격이 빌라보다 훨씬 비싸다는 점이다.


7월 KB부동산 시세 조사 결과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평균 6억4,944만원으로 연립주택(빌라) 2억3,327만원의 2.8배에 육박한다. 아파트 전세에 필요한 목돈이 부족하니 보증금을 줄이고 일부를 월세로 부담하는 세입자가 늘어나고 있다. 요즘 아파트에서 월세 계약은 전면 월세보다는 준전세나 준월세 계약에 더 가깝다(현재 준전세나 준월세는 월세로 분류된다).


셋째, 최근 전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한 것도 월세화를 가속화한 또 다른 요인이다. 한 30대 신혼부부는 “전세가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좀 비싸더라도 월세살이가 낫다고 생각하는 젊은 층이 많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생활한 사람이 늘면서 월세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넷째, 6·27 수도권 대출 규제가 월세화 흐름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규제로 주택 매매가 어려워진 신혼부부 등 많은 이들이 전세나 월세를 선택하고 있다. 앞으로 추가 대책으로 전세대출에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적용하면 월세화는 가속화될 수 있다. 전세대출이 어려우면 어쩔 수 없이 월세로 임대료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낯선 말이 될 갭투자와 깡통 전세

이런 상상을 해본다. 진짜 한국에서 전세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주택시장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몇 년 전 한국을 찾은 한 외국인에게 우리나라 전세 제도를 얘기했더니 신기하게 생각했다. 무엇보다 세입자가 맡긴 보증금 전액을 2년 뒤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다는 점에 놀라워했다.


“한국의 전세 제도를 외국에도 보급해야 한다”고 격찬하던 그의 말이 기억난다. 전세로 살면 2년 동안 보증금을 맡기고 저축을 열심히 해서 나올 때 목돈을 쥘 수 있다. 일종의 강제 저축 효과다. 요즘은 전세를 구할 때 은행에서 전세대출을 받지만, 그래도 전세대출금리(6월 기준 연 3.71%)가 월세 부담보다는 저렴한 편이다.


전세는 내 집 마련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일단 전세를 끼고 사뒀다가 돈을 모아 더 좋은 곳으로 이사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요즘 젊은 세대의 상급지 갈아타기 방식도 이런 갭투자를 활용한다. 월세 시대가 되면 내 집 마련을 위한 ‘사적 사다리’가 사라진다.


매달 월세 지출로 자산을 축적하지 못한 월세살이 처지에선 내 집 마련은 ‘언감생심’이다. 그래서 전세 제도가 사라지면 제도권 금융에서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초장기 모기지를 선진국처럼 크게 늘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후진국형 사금융’이라는 전세는 세입자에게 유리한 제도지만 부작용도 많다. 전세를 ‘위험한 꿀 복지’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세가 사라지면 세입자 보증금을 활용한 갭투자가 사라질 것이고 깡통 전세나 전세 사기로 전 재산을 잃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전세 세입자 보증금 보호에 초점을 맞춘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도 수정될 수 있다. 월세로 산다면 임대차등기명령제도나 확정일자 같은 보호 장치의 중요성도 줄어든다.

집값 잣대도 달라진다

월세 시대가 되면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전세가율)을 의미하는 ‘전세가율 지표’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전세가율은 주택가격의 거품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었고, 전세가율이 60%를 넘어서면 집값을 밀어 올린다는 ‘경험의 법칙’도 쓸모가 없어진다. 월세가 보편화되면 주택 가치 평가도 달라질 것이다.


미래 예상되는 수익(월세)을 기준으로 적정 가격을 추산하는 ‘수익환원법’이 각광받을 가능성이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미국의 적정 주택가격을 연간 임대료의 20배 이내로 봤다. 이처럼 앞으로는 월세 수익률에 따라 아파트 등급이 매겨질 것이다. 세상일이 그렇듯 경제 현상도 양면이 존재한다. 월세화는 세입자에게 임대료 부담을 가중시키지만, 은퇴 집주인에게는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또 다른 금융상품이 될 수 있다.


전세는 시장에서 ‘야누스의 두 얼굴’이다. 부동산시장 침체기에는 집값 하락을 막는 지지선이나 버팀목 역할을 한다. 교환가치인 매매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사용가치인 전세가격 이하로 낮아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세 시대가 되면 이 지지선이 사라져 집값의 하방 경직성이 그만큼 떨어진다. 상승기에 전세는 시장 불안의 도화선이 되기 쉽다.


요즘 집값 상승 주요인으로 지목되는 갭투자는 전세 제도가 만든 한국식 투자 기법이다. KB부동산 시세에 따르면, 7월 현재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은 68.2%다. 전세대출이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세입자가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자금의 70% 정도를 쥐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불안심리가 팽배해지면 세입자가 매매시장으로 뛰어들어 순식간에 ‘불장’을 만든다.


하지만 월세 시대가 되면 이런 연결고리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지금은 대출을 규제해도 전세보증금을 활용한 갭투자로 집을 살 수 있으나 월세 시대에는 불가능해진다. 자금력이 없는 상태에선 집을 사고 싶어도 남의 떡이나 다름없다.


그만큼 세입자가 시장흐름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정부의 시장 통제력이 더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대출 규제나 금리인상 카드를 활용하면 시장 안정 효과가 더 빠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전세에서 월세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 전세대출을 줄이면 월세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금세(金貰)살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전세가 귀해질 가능성이 높다. 월세 시대가 오면 ‘내 집’과 ‘월세살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젊을 때는 그나마 안정적인 급여가 있으니 월세살이는 견딜 만하다. 집을 사지 않고 다른 곳에 투자해서 벌충하면 된다. 하지만 은퇴자는 사정이 다르다. 월세를 받아도 모자랄 지경에 월세를 낸다고 생각해보라. 고령층과 취약층에게 임대료를 지원하는 바우처 확대 등 월세 시대에 맞는 주거복지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나무로 만들어진 ‘집 모양’의 열쇠고리가 놓여져있다. 왼쪽에는 열쇠가 이어져있다.

이 콘텐츠의 원문은 GOLD&WISE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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