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나란히, 교토

2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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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시야마의 유명한 '단풍 뱃놀이', 야카타부네. 12월 초 절정을 이루는 아라시야마의 단풍은 푸른 강물과 선명한 대조를 이뤄 운치를 더한다.

아라시야마의 유명한 단풍 뱃놀이, 야카타부네. 12월 초 절정을 이루는 아라시야마의 단풍은 푸른 강물과 선명한 대조를 이뤄 운치를 더한다.

찻사발에 풍성한 거품을 내어 다도로 즐기는 쌉싸래한 말차와 트렌디한 분위기의 카페에서 인증샷을 찍은 뒤 마시는 크리미한 말차라테. 일본 교토는 이 두 가지 맛을 능히 충족시키는 도시다. 천년 고도의 역사와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골목 곳곳에는 감각적인 장소가 차고 넘친다.


그렇다고 호젓하고 평온한 분위기의 ‘교토스러운’ 풍경을 기대한다면, 글쎄. 현실의 교토는 전 세계 여행객들로 늘 북적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장소를 방문할 때는 문을 여는 이른 시간에 방문하고, 사람들이 몰리는 여행 코스에서 한 발짝 떨어져 걸을 때 비로소 교토의 고즈넉한 감성이 눈에 들어온다.

가장 교토다운 풍경

잔잔하고 평온한 분위기가 교토스러운 매력을 더하는 '가모가와 강변'.

잔잔하고 평온한 분위기가 교토스러운 매력을 더하는 가모가와 강변.

100년 전 다이쇼 시대의 목조 가옥이 즐비한 '니넨자카'. ‘이 길에서 넘어지면 3년 안에 재앙이 찾아온다’는 전설을 피하려면 주변 상점에서 판매하는 호리병을 몸에 지녀야 한다.

100년 전 다이쇼 시대의 목조 가옥이 즐비한 니넨자카. ‘이 길에서 넘어지면 3년 안에 재앙이 찾아온다’는 전설을 피하려면 주변 상점에서 판매하는 호리병을 몸에 지녀야 한다.

사찰과 단풍, 그 너머로 보이는 도심까지 한 프레임 안에 담기는 곳. 오토와산 중턱에 자리한 기요미즈데라(淸水寺)에 오르면 비로소 교토에 왔음을 실감한다. 교토의 사찰 1,000여 개 가운데 기요미즈데라는 첫손에 꼽히는 천년 고찰이다.


778년 창건 이후 1633년 재건을 거쳐 400년 가까운 시간을 건너 오늘에 이르렀다. 교토의 가을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스폿답게 관람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끝없는 인파 행렬을 피하고 싶다면, 오전 6시에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입장하는 방법뿐이다. 기요미즈데라에 오르려면 통과의례처럼 지나야 하는 길이 있다.


반질반질하게 닳은 돌길을 따라 100년 전 다이쇼 시대의 목조 가옥이 즐비한 ‘니넨자카’와 ‘산넨자카’다. 과거에는 참배를 위해 오르던 돌계단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전통의상을 입은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거나 카페, 레스토랑, 편집 숍이 즐비한 쇼핑거리가 됐다.


이른 아침, 가게들이 문을 열기도 전의 니넨자카 거리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한적한 오르막길을 따라 10분 남짓 올랐을까. 묵직한 풍채의 기요미즈데라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본당 건물은 거대한 나무 기둥 172개가 떠받드는 형세다.


높이가 13m에 달하는데 못 하나 박지 않고 지어졌다니 놀랍다. 노송나무 껍질을 이어 만든 전통 일본식 지붕은 켜켜이 쌓인 세월의 주름으로 그 무게감을 드러낸다. 본당에 있는 넓은 테라스 격의 툇마루 ‘기요미즈노부타이’는 교토의 계절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탁 트인 풍광 앞에서 이질적으로 여겨지던 교토타워도 이 순간만큼은 꽤 낭만적이다.


산넨자카를 통해 걸어 내려와 기온(祇園)으로 향했다. 기온은 교토의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구역으로, 골목마다 ‘마치야’라고 하는 일본 전통 가옥이 즐비하다. 절제미를 품은 옛집들은 여전히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채 찻집, 식당, 주점으로 영업 중이다.


그중에는 에도 시대의 고급 요정도 있다. 기온의 골목은 교토의 게이샤 문화의 중심지다. 예술을 뜻하는 ‘게이’와 사람을 뜻하는 ‘샤’를 합친 게이샤는 음악 연주와 무용, 시 짓기 등 일련의 수련 과정을 거친 전통 예술가다. 교토에서는 게이코라고 하는데, 기온의 게이샤 골목에서는 하얀 얼굴에 기모노를 차려입은 게이코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낮보다는 이른 저녁에 가야 게이코를 볼 확률이 높지만, 무턱대고 카메라부터 들이대면 곤란하다. 게이코를 무분별하게 촬영하려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촬영을 금하거나 아예 관광객 출입을 막는 골목도 있으니 주의한다.


교토 시민의 쉼터이자 휴식처로 사랑받는 가모가와 강변은 단정한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난 교토의 잔잔함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해 낮보다는 해 질 무렵 산책하길 추천한다.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폰토초 거리는 조그마한 이자카야가 다닥다닥 모여 있어 밤에 활기를 띠는 곳이다. 서울 종로의 옛 피맛골을 연상시키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은은한 조명과 음식 냄새,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해 교토의 밤을 보내기에 더할 나위 없다.

기온의 골목에서 만난 '게이코'. 과도한 사진 촬영은 금물이다.

기온의 골목에서 만난 게이코. 과도한 사진 촬영은 금물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천년 고찰, '기요미즈데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천년 고찰, 기요미즈데라.

현대적인 공간들

교토의 번화가이자 쇼핑 중심지인 '시조 거리'. 가와라마치와 산조 거리에 이르기까지 온갖 다양한 상점으로 가득해 구경하려면 반나절도 부족하다.

교토의 번화가이자 쇼핑 중심지인 시조 거리. 가와라마치와 산조 거리에 이르기까지 온갖 다양한 상점으로 가득해 구경하려면 반나절도 부족하다.

'기요미즈데라'는 교토 제일가는 단풍 명소로, 이른 시간에 방문할수록 덜 혼잡하다. 본당 건물과 단풍, 하늘을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에서 기념사진도 잊지 말 것.

기요미즈데라는 교토 제일가는 단풍 명소로, 이른 시간에 방문할수록 덜 혼잡하다. 본당 건물과 단풍, 하늘을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에서 기념사진도 잊지 말 것.

가와라마치역 인근의 시조 거리와 가와라마치 거리가 교차하는 시조가와라마치 일대는 교토에서 가장 번화한 중심지이자 쇼핑가다. 일본을 대표하는 후지이다이마루와 다카시마야 백화점은 각각 우리나라 여행객에게 응커피로 유명한 ‘% Arabica’ 카페와 세련된 각종 오브제를 판매하는 ‘쓰타야’를 구경하는 재미로 유명해 한 번쯤 둘러볼 만하다.


‘교토의 부엌’이라 불리는 1,300년 역사의 니시키 시장을 비롯해 아케이드 형태의 쇼텐가이(상점가)인 데라마치 쇼텐가이, 산조 메이텐가이도 눈길과 발길을 붙든다. 과자점이나 식기 전문점, 400년 전통의 바느질 도구 전문점, 수제 부채 전문점 등 일본의 전통 상점이 한데 모여 있어 하나하나 돌아보는 즐거움이 크다. 산조(三条) 거리는 젊고 트렌디한 분위기가 좀 더 물씬 풍기는 곳으로, 카페와 편집 숍, 맛집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산조 거리에서 한 블록 떨어진 가라스마오이케역에는 교토의 핫 플레이스, 신푸칸(新風館)이 자리한다. 1926년 세워진 교토 중앙전화국을 리노베이션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오래된 붉은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카페와 레스토랑, 서점, 개성 넘치는 패션 숍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공간 자체가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가득한데, 특히 중정으로 꾸민 단아하고 정갈한 정원은 더없이 교토스럽다. 정원을 지나면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구마 겐고가 디자인한 에이스 교토 호텔로 연결된다. 24시간 개방된 에이스 호텔 로비는 투숙객이 아니어도 편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미국의 3대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로 유명한 스텀프타운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쉬어 가기 좋다.


교토에서 고즈넉한 순간을 원할 때 방문하기 좋은 장소가 교토부립식물원과 그 옆에 자리한 ‘교토부립 도판 명화의 정원’이다. 일본 최초의 식물원인 교토부립식물원은 낮에는 평화로운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고, 밤에는 빛과 소리를 이용한 라이트 쇼가 펼쳐져 감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식물원 옆에 자리한 교토부립 도판 명화의 정원은 노출 콘크리트의 대가 안도 다다오가 1994년 건축한 야외 미술관이다.


도판은 세라믹 타일 표면에 그림을 인쇄해 시간이 흘러도 변색되지 않는 작품을 말한다. 노출 콘크리트가 만들어낸 절제된 분위기의 건물 곳곳에는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과 물소리, 계절의 변화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 전시돼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물 안에 잠긴 클로드 모네의 ‘수련·아침’이 반기고, 실제 크기로 재현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보는 순간 전율이 일며 압도된다.


끝없이 흐르는 물줄기 소리와 빛의 산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자, 창에 내걸린 단풍나무와 뻥 뚫린 하늘까지, 모든 게 작품처럼 느껴져 잠시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에 만족스러운 공간이다.

'안도 다다오'의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과 타일에 인쇄된 명화, 빛이 3박자를 이루는 교토부립 도판 명화의 정원.

안도 다다오의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과 타일에 인쇄된 명화, 빛이 3박자를 이루는 교토부립 도판 명화의 정원.

‘교토의 부엌’이라 불리는 니시키 시장. 눈길을 끄는 구경거리는 많지만 관광객이 많이 찾다보니 전반적으로 음식 가격은 비싼 편이다.

교토의 부엌이라 불리는 니시키 시장. 눈길을 끄는 구경거리는 많지만 관광객이 많이 찾다보니 전반적으로 음식 가격은 비싼 편이다.

고급스럽고 정갈한 톤앤매너가 돋보이는 교토를 대표하는 복합문화공간, '신푸칸'.

고급스럽고 정갈한 톤앤매너가 돋보이는 교토를 대표하는 복합문화공간, 신푸칸.

담백한 맛, 아라시야마

'치쿠린 대나무숲'은 가을 단풍과는 또 다른 아라시야마 여행의 청량감을 선물한다.

치쿠린 대나무숲은 가을 단풍과는 또 다른 아라시야마 여행의 청량감을 선물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덴류지'는 반드시 정원과 본당을 함께 둘러보는 입장권을 구입하길 추천한다. 사찰 내부에 앉아 물끄러미 정원을 바라보는 시간은 교토 여행에서 손에 꼽을 만큼 기억에 남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덴류지는 반드시 정원과 본당을 함께 둘러보는 입장권을 구입하길 추천한다. 사찰 내부에 앉아 물끄러미 정원을 바라보는 시간은 교토 여행에서 손에 꼽을 만큼 기억에 남는다.

덴류지 본당 뒤편으로 한 점의 수채화처럼 펼쳐진 '소겐치 정원'.

덴류지 본당 뒤편으로 한 점의 수채화처럼 펼쳐진 소겐치 정원.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 아라시야마 앞으로 시원하게 가쓰라강이 흐르고, 거대한 초록 터널을 이루는 대나무 숲길과 과거에서 튀어나온 듯한 인력거를 타고 강변을 내달릴 수 있는 곳. 교토에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해 40분이면 닿을 수 있는 아라시야마는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교토의 가을 명소다.


한큐선 아라시야마역에서 나와 조금 걸으면 가쓰라강을 가로지르는 길이 155m의 도게츠교가 반갑게 맞는다. ‘달이 건너는 다리’라는 이름의 도게츠교는 아라시야마를 대표하는 사진 속 단골 피사체다. 이 다리를 배경으로 붉은 단풍으로 물든 산과 강을 함께 찍으면 마치 일본의 기념품점에서 볼 법한 가을 엽서가 완성된다.


도게츠교를 부지런히 건너면 왼편에 덴류지 입구가 나오고, 좀 더 걸으면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치쿠린 대나무숲에 닿는다. 꽤 먼 거리를 걸어야 하기에 자전거를 대여해 둘러보는 이들도 많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덴류지’는 원래 왕실 별궁이었으나 소실되었다가 1900년대에 재건된 불교 사찰로, 아름다운 소겐치 정원으로도 유명하다.


덴류지 입구로 들어서면 거대한 지붕이 인상적인 오호조 건물이 반긴다. 건물 앞에는 모래로 꾸민 소담한 정원이, 건물 뒤편으로는 개방감을 선사하는 소겐치 정원이 자태를 드러낸다. 700년 전 일본의 유명 정원가가 만든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적 공간이다. 건물 툇마루에 걸터앉아 연못 위로 내려앉은 정원의 고아한 정취를 음미하다 보면 일본 정원의 정갈한 멋에 푹 빠지게 된다.


치쿠린은 대나무숲 특유의 청량한 기운 덕에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곳이다. 많은 인파 때문에 호젓함을 느끼기는 힘들지만, 파란 가을 하늘과 바람결에 댓잎이 스치며 나는 서걱이는 소리는 그 자체로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다시 도게츠교로 발길을 돌려 이 지역의 명물인 ‘% Arabica’ 본점의 진하고 고소한 교토라테 한 모금을 마셨더니 피곤이 싹 가셨다. 교토 시내로 돌아갈지, 시티버스를 타고 근처에 있는 금각사로 향할지 고민하다 잠시 이 순간을 즐기자는 결론을 내렸다. 무해하기 그지없는 풍경과 맛있는 커피의 조합, 이 역시 교토 여행에서 누릴 수 있는 잔잔하고 평온한 감성이었다.

이 콘텐츠의 원문은 GOLD&WISE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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