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중되는 역전세난, 집값의 최대 변수로 부상

2023.02.27

읽는시간 4

0

'작은 모형 집'이 '달러 지폐'위에 올려져 있고, 뒤 쪽으로는 동전들이 아파트나 빌딩처럼 쌓여있다.

새해 들어 부동산 시장에 핫 이슈가 등장했다. 바로 역전세난이다. 역전세난은 전세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전세 가격이 떨어지면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운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전세 시장의 소화불량으로 볼 가능성이 크다.

 

올해 부동산 시장의 가장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역전세난이 어느 정도 완화되어야 주택 시장도 회복될 기미를 보일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역전세난이 지속되는 한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금리나 경기 침체보다 역전세난 주목

올해 주택 시장의 4대 변수를 꼽으라면 고금리, 정부 정책, 경기 침체, 역전세난이 아닌가 싶다. 먼저 고금리다. 2023년 2월 초 현재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연 3.5%다. 미국이 금리를 추가적으로 인상하면 한국은행이 한 번 더 올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박스권에 들어왔다는 점에서 변수보다는 상수에 더 가깝다. 고정변수라는 말도 괜찮다.

 

그리고 정부 규제 완화책은 나올 것은 거의 다 나왔다. 정부가 발표한 내용을 국회에서 일부 입법화하는 과정만 남았다. 경기 침체 변수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올해 우리나라 실질 경제성장률이 플러스만 유지한다면 부동산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정도의 메가톤급 악재는 아니다. 여러 연구 기관의 예측을 살펴보니 역성장(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하는 곳은 드물었다.

 

유일하게 역성장을 예상했던 일본 노무라증권도 한국 경제 성장률을 –1.3%로 봤다가 최근 들어 –0.6%로 다소 올렸다. 이제는 역전세난을 잘 지켜봐야 한다. 주택 시장을 분석하든, 아니면 내 집을 장만하려는 실수요자든 말이다.

집주인과 세입자, 갑과 을이 바뀌다

“요즘 세입자가 왕이죠.”

며칠 전 만난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요즘 역전세난이 심각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요즘 역전세난은 고금리 충격으로 전세 가격이 떨어지고 거래까지 마비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세입자도 전세보다 월세를 찾는다. 은행에서 전세 대출을 받는 것보다 월세로 지불하는 게 유리한 데다 깡통전세에 대한 걱정이 크기 때문이다. 전세 가격 하락은 수요는 줄어드는데 공급이 많다는 얘기다.

 

이 바람에 전세 가격이 2년 전에 비해 심하게는 반 토막이 났다. KB국민은행 통계를 보면 2023년 1월 서울 지역 아파트 전세 가격 비율은 52%로 2012년 5월(51.9%)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매매 가격보다 전세 가격이 더 떨어지니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한편으로는 요즘 전세 시장 경착륙을 이렇게 볼 수도 있다. 그동안 전세 가격이 너무 많이 오르다 보니 생긴 후유증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전세 가격 급등에는 임대차 3법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바로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 도입을 골자로 한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이다. 2020년 7월 31일부터 시행되면서 한동안 전세시장이 요동쳤다.

 

계약 기간이 2년에서 최장 4년까지 늘어나면서 집주인은 그 기간만큼 전세 가격을 올려 받겠다고 나섰다. 전세 거주 기간이 길어지면서 시장에서 유통되는 매물이 줄어 일시적 수급난이 생겼다.

 

전세 가격이 고공비행할 수밖에 없었다. 2021년에 전세 가격 고점을 찍은 지역이 많다. 전세 가격과 매매 가격 차이가 줄어 갭투자도 기승을 부렸다. 매매든 전세든 심한 버블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세 가격이 급락하면서 세입자와 집주인의 관계가 역전됐다. 2~3년 전만해도 집주인이 갑이었지만 이제는 을로 바뀌었다.

계약갱신청구권, 세입자는 공포의 대상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세입자가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 집주인은 3개월 이내 전세 보증금을 되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묵시적 계약 갱신과 비슷한 것이다.

 

가령 2021년 12월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세입자가 있다고 하자. 임대차보호법을 잘 모르는 집주인은 ‘10개월 후 세입자가 나갈 테니 천천히 준비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세입자는 계약 기간 중 언제든지 나가겠다고 할 수 있고, 그 통보를 받은 집주인은 3개월 이내에 전세 보증금을 돌려줘야 한다. 세입자가 나갈 때 당연히 중개수수료 부담도 없다. 전세 보증금은 사실상 집주인에게 차입금, 즉 부채다. 세입자가 나가겠다는 것은 3개월 안에 빚을 갚으라는 독촉장 같은 것이다.

 

하지만 채무 이행을 하기가 녹록지 않다. 세입자로부터 갑자기 나간다는 통보를 받은 집주인은 “갑자기 2억~3억원을 어디서 끌어오느냐”며 울상을 짓는다. 유례없는 역전세난에 그나마 싼 전세가에 세입자를 구하려고 해도 찾기 어렵다.

 

아파트 담보로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세입자가 있으면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은행에서 선순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더 초조해진다. 빚을 상환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세입자가 강제 경매에 부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돈 마련이 여의치 않은 집주인은 급매물로 내놓아 대처 방안을 찾는다. 아예 집을 팔거나 아니면 시세보다 더 싸게 전세를 내놓는 것이다. 집주인의 고육지책이다. 이런 급매물이 매매시장과 전세 시장을 압박하고 있다.

갭투자 매물이 집값 하락 부르나

몇 년 전 한 유튜버는 갭투자로 7채를 샀다고 자랑했다. 지금은 아마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 상환 압박에 좌불안석일 것이다. 갭투자는 세입자에게 돈을 빌려 우상향 기우제를 지내는 레버리지 투자다. 세입자 차입금을 자금으로 삼아 집을 사는 것이므로 고위험 투자인 셈이다.

 

지금 갭투자의 후유증이 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서울은 한때 주택 거래량의 절반 이상이 갭투자였다(2022년 1월~8월 53%). 혹여 금융 기관 대출이 많더라도 자기 집에 거주하는 ‘영끌자가’라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견딜 것이다.

 

고통스럽겠지만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다. 하지만 갭투자는 그렇지 않다. 갭투자는 어찌 보면 주식의 신용거래 융자와 비슷하다. 돈을 빌려오는 대상이 개인이냐, 기관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갭투자와 신용거래 융자는 상환 기한이 짧다. 갭투자는 세입자로부터 2년짜리 단기 대출금을 끌어 쓰는 것과 같다. 일반 담보대출이라면 대출 기한을 최장 50년까지 늘릴 수 있으므로 단기적으로 차입금 상환에 큰 압박이 없다.

 

물론 갭투자도 평상시 같으면 새로운 사적 대출자(전세 세입자)를 구해‘빚 돌려막기’가 가능하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자금 경색기다. 갭투자자는 위기 때 코너로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23년 봄 내 집 마련 수요자의 자세

지금 부동산 시장은 호재와 악재가 뒤섞여 혼조세다. 3월 이후 거래량이 다소 늘어날 것이다. 낙폭이 심한 지역에서 특례보금자리대출의 수혜를 받는 중소형 급매물을 중심으로 거래가 일부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 온기가 도는 게 아니라 거래 절벽에 다소 숨통이 트이는 양상일 것이다. 매수 심리가 여전히 바닥권이어서 거래가 이뤄진다고 해도 상승 반전되기는 어렵다.

 

시장을 압박하는 역전세난이 지속하는 한 바닥을 찍기보다는 바닥을 다지면서 매물 소화 과정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 부동산 시장에 임하는 자세는 헐값 사냥꾼(바겐 헌터)이다.

 

올해 급히 집을 장만해야겠다면 낙폭 과대 지역(수도권 2021년 4분기 고점 대비 40%, 서울 30% 이상 하락 지역)을 골라 매입하는 것이다. 누구든 시세를 잘 보거나 현장에 가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내 가슴이 확 뜨거워질 정도로 매력적인 매물을 골라라. 지금은 최우선으로 가격 메리트를 따질 때다. 아무리 입지가 좋아도 싸지 않으면 ‘글쎄’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입지 전쟁이 아니라 가격 전쟁이다.

한 남자가 쟁반위에 올려진 '여러 빌딩'들 중 하나를 손으로 고르고 있으며, 2023년이라고 빌딩 들 사이에 쓰여 있다.

박원갑

KB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부동산 시장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 미래를 읽는 인사이트를 제공합니다.

박원갑

금융용어사전

KB금융그룹의 로고와 KB Think 글자가 함께 기재되어 있습니다. KB Think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