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고의 럭셔리 리조트가 즐비한 발리와 달리 주변 섬은 장엄한 자연 자체만으로 압도적 존재감을 드러낸다. 롬복, 플로레스, 코모도, 린차 등 발리 주변의 여러 섬을 한데 모아 ‘누사 틍가라(Nusa Tenggara)’라고 한다. ‘틍가라’는 남동쪽을 나타내는 말이고, 누사는 섬을 뜻하므로 ‘동남쪽에 열 지어 있는 섬들’이라는 뜻이다.
그중에서도 누사 틍가라 동부에 아름다운 섬이 많은데, 대표적인 곳이 코모도섬이다.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공룡 후예, 코모도왕도마뱀의 유일한 서식처다. 코모도섬을 필두로 린차, 파다르를 비롯한 작은 섬 26개는 코모도 국립공원(Komodo National Park)으로 지정돼 보호받는다.
마치 아프리카 초원의 사파리 투어를 즐기듯, 코모도 국립공원을 둘러보려면 항해가 필수다. 항해의 시작점이자 코모도 국립공원의 관문은 플로레스섬의 라부안 바조(Labuan Bajo) 항구다. 가볍게 당일 투어를 즐길 수도 있지만, 커다란 짐 가방을 들고 보트에 오르는 관광객도 적지 않다.
짧게는 2~3일, 길게는 보름 남짓 배 위에서 생활하는 리브어보드(Liveaboad) 투어는 코모도 국립공원을 탐험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배에서 먹고 자고, 틈틈이 바다에 뛰어들어 만타가오리와 헤엄치는 스노클링과 다이빙을 즐기고, 섬에 정박해 트레킹까지 하면서 인도네시아의 대자연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일정이다.
리브어보드 투어는 편의 시설을 잘 갖춘 럭셔리 보트부터 인도네시아 전통 목선인 피니시(Phinisi)까지 배 상태와 일정에 따라 요금 편차가 크다. 하얀 돛이 펄럭이는 피니시는 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로만 만든 것으로, 먼 옛날 대항해시대를 체험하는 듯한 낭만을 선사한다.
리브어보드 투어에서 반드시 들르는 일출 명소가 파다르섬(Padar Island)이다. 이 섬에는 코모도왕도마뱀이 살지 않으며, 빛을 따라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산봉우리가 장관을 이뤄 트레킹 명소로도 사랑받는다. 동 트기 전 어슴푸레한 미명에 섬의 정상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정상이라고 해서 겁먹을 필요가 없는 게, 간간이 숨을 몰아쉬는 정도의 가파르지 않은 언덕이다. 30분 남짓 오르고 나면, 드디어 섬의 가장 높은 곳에 도착한다. 서서히 해가 떠오르며 섬의 온전한 형태가 비로소 눈에 담긴다. 그저 ‘경이롭다’라는 말 외에 달리 떠오르는 표현이 없을 만큼 탁 트인 초원 지대와 깊은 골짜기, 물결처럼 들고 나는 해안선은 태초의 상태 그대로인 듯하다.
모래색에 따라 달리 보이는 화이트 비치, 블랙 비치, 핑크 비치도 인상적이다. 일상의 상념이 민들레 홀씨처럼 하늘 높이 훌훌 날아가버리는 기분이다. 그저 넋 놓고 바라보는 것이 전부지만, 파다르섬이 드러내는 경탄할 만한 경관 앞에서는 그것이 최선이다.
공룡을 연상시키는 육중한 몸집과 도무지 귀여운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위협적인 생김새의 코모도왕도마뱀은 코모도와 주변 섬에 5,000마리 정도 살고 있다. 왕도마뱀보다는 현지인이 부르는 ‘코모도 드래건’이 더 어울릴 듯하다. 녀석에게 물리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섬의 최상위 포식자로, 코모도섬을 둘러볼 때는 반드시 레인저와 동행해야 한다.
레인저가 들고 있는 거라곤 Y자 모양의 긴 막대기가 전부지만, 코모도왕도마뱀의 공격성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라 믿고 의지해도 된다. 물론, 코모도왕도마뱀을 눈으로 목격하고 나면 그 잔상은 시간이 지나도 쉬 잊히지 않을 만큼 임팩트가 강하다. 코모도왕도마뱀 외에 코모도섬의 또 다른 명물은 핑크 비치다.
섬 동쪽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핑크 비치 7개 중 하나가 존재한다. 흡사 딸기우유를 부은 듯한데 붉은 산호 조각과 조개의 잔여물이 한데 섞여 환상적인 분홍빛을 뽐낸다. 보석처럼 맑은 물에서 스노클링과 다이빙을 즐기기에도 더없이 완벽한 장소다.
욕야카르타를 통해 인도네시아 문화와 역사의 다양성을 배우고, 코모도 국립공원을 항해하며 장엄한 대자연의 숨결을 경험하다 보면 비로소 깨닫는다. 발리의 명성 뒤에 가려진 인도네시아는 알면 알수록 출구 없는 매력으로 가득한 다채로운 여행지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