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매매가격의 등락을 주시하던 시장의 시선이 최근 전세시장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서울에선 3월 중순 이후 주간 단위 통계에서도 전세가격 상승률이 매매가격 상승률을 넘어서는 ‘역전 현상’이 뚜렷하다. 수천 가구 대단지에서조차 전세 매물을 찾아보기 힘든 품귀 현상은 시장의 불안을 가중시킨다. 전세시장의 이 같은 동요는 향후 집값의 향배를 가늠할 결정적 시금석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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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매매가격의 등락을 주시하던 시장의 시선이 최근 전세시장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서울에선 3월 중순 이후 주간 단위 통계에서도 전세가격 상승률이 매매가격 상승률을 넘어서는 ‘역전 현상’이 뚜렷하다. 수천 가구 대단지에서조차 전세 매물을 찾아보기 힘든 품귀 현상은 시장의 불안을 가중시킨다. 전세시장의 이 같은 동요는 향후 집값의 향배를 가늠할 결정적 시금석이 될 것인가.
전세, 가격보다 매물 실종이 더 큰 문제
전세시장 불안의 핵심은 ‘가격’보다 ‘매물 실종’이다. KB부동산 시세에 따르면 5월 현재 서울 지역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103.1로 2022년 7월 고점(104.8) 대비 1.66% 하락한 상황이다. 수도권(-6.92%)과 지방 5개 광역시(-11.17%) 역시 고점 회복까지는 아직 거리가 있다. 통계만 놓고 보면 지금 상황을 전고점을 향한 완만한 회복 과정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또 다른 신호를 보낸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의 조사 결과 서울 지역 아파트 전세 매물은 지난해 이맘때보다 21% 급감했다.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가 늘어난 데다 주택 구입자의 실거주 의무 요건까지 강화되면서 유통 매물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경계해야 할 것은 통계의 착시다. 시세 통계는 과거의 숫자를 집계하는 후행적 지표다. 변화의 전조는 가격이 아니라 수급의 균열에서 시작된다. 통계 수치만 믿고 시장을 방심하는 것은 자칫 ‘백미러만 보고 운전하는 격’이 될 수 있다. 지금은 후행하는 시세보다 현장의 매물 실종이 가져올 휘발성에 더 주목해야 한다.
강북 매매-전세-월세 트리플 강세
이 가운데 서울 강북 지역 아파트시장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매매, 전세, 월세가 일제히 고개를 드는 ‘3중 강세’ 현상이 유독 뚜렷하다. KB부동산 시세에 따르면 올해 들어 5월까지 서울 강북 14개 구 아파트 전세가격 상승률은 4.6%를 기록했다. 강남 11개 구(2.6%)를 크게 앞지른 수치다. 특히 강북구(7.49%)와 성북구(6.14%)의 상승세가 가팔랐다.
전세 불안은 즉각 월세시장으로 전이됐다. 같은 기간 강북 14개 구의 월세 상승률은 4.54%로 이 역시 강남 11개 구(2.87%)를 뛰어넘었다. 임대차 시장의 동반 강세 속에 매매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4월까지 강북 14개 구의 매매가격 상승률은 6.09%를 기록하며 강남 11개 구(5.15%)를 넘어섰다. 전세-월세-매매로 이어지는 연쇄 반응은 주택시장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고 있음을 방증한다.
매매와 전세, 월세는 독립된 듯 보이나 실제로는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는다. 매매와 전세가 형제지간이라면, 매매와 월세는 팔촌지간쯤 된다. 전세 시스템이 공고한 한국 주택시장에서 월세는 대개 전세를 거쳐 시세가 형성된다. 전세를 월세로 바꿀 때 적용되는 이율을 의미하는 전월세전환율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 세 시장은 주거 서비스의 공급과 소비라는 생태계를 유지하는 공생 파트너다. 일방적인 관계는 없다. 피드백의 연속일 뿐이다.
심리학자 김정운은 대화의 본질을 ‘턴테이킹(Turn-taking)’이라 정의했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그에 맞는 박자로 자신의 이야기를 얹는 상호 교감의 리듬이다. 주택시장도 다르지 않다. 전세시장이 가격 신호를 보내면 월세시장이 응답하고, 그 응답이 다시 매매시장의 기대를 형성한다.
주목할 점은 중저가 주택 밀집 지역일수록 이러한 연결 구조가 더 뚜렷하다는 사실이다.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 비율이 높아서다. KB부동산 조사 결과 강북 14개 구의 아파트 전세가 비율(54%)은 강남 11개 구(46.5%)보다 훨씬 높다.
강북은 자본이득(시세차익) 중심으로 움직이는 강남권 주택시장과는 체질부터 다르다. 강남권은 투자 수요가 많아 시장 간 전이가 완만하게 나타난다. 반면 비강남권은 실거주 수요 중심이어서 매매와 임대차 시장이 즉각적이고 민감하게 맞물린다. 가령 중저가 주택시장에서 전세를 구하러 왔다가 매물이 없으면 매매를 선택할 수 있다.
임대차 시장의 불안이 고스란히 매매 심리를 자극하는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셈이다. 한쪽이 오르면 다른 한쪽이 보조를 맞추는 강한 ‘동행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서민층 주거 밀집 지역일수록 전월세시장이 불안하면 매매시장의 안정을 기대하기 어렵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전세 불안, 국지적 매매 자극 가능성
전세 매물 부족으로 일부 매수 전환 수요가 발생하고 있으나 매매가를 본격적으로 밀어 올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통상 전세가율이 60%를 넘어서면 매매가격을 자극한다는 통설이 있다. 그러나 현재 서울의 전세가 비율은 이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실제 KB부동산 기준 서울 지역 아파트 전세가 비율은 5월 현재 50.9%에 불과하다. 75.1%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10년 전(2016년) 상황과는 판이하다.
다만 최근 젊은 세대의 매수세가 집중되는 강북권은 상황이 다르다. 강북구(63.5%), 중랑구(62.9%) 등 일부 지역은 60%를 훌쩍 넘는다. 경기도(67%)나 인천(68.9%) 등 수도권도 높은 수준이다. 결국 전체적으로는 아닐지라도 국지적으로는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을 밀어 올리는 동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중저가 주택시장에서 시작된 전세가격 자극이 서울 고가 지역으로 번져 나갈지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주거 안정 없인 시장 안정 힘들어
서울 주택시장의 ‘북고남저’ 현상에서 보듯 서민층에게 주거 안정과 시장 안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연적 관계다. 한쪽 시장의 불안이 다른 쪽으로 번지는 속도가 매우 빠르기에 정책적 대응 또한 입체적이어야 한다. 어느 한쪽의 안정만을 꾀하는 임기응변은 시장 전체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악수가 될 수 있다.
경계해야 할 지점은 정책의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특정 시장의 안정만을 목표하는 정책은 예기치 못한 후폭풍을 낳기 마련이다.
요컨대 주택시장의 해법은 매매-전세-월세의 상호 연관 구조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양자역학의 ‘양자 얽힘’은 입자들이 시공간을 초월해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한다. 부동산시장 역시 마찬가지로, 독립된 파편이 아닌 촘촘한 그물망으로 엮인 상호의존적 구조다.
시장의 호흡을 읽고 전세와 매매가 주고받는 리듬을 존중하며 정책적 정교함을 더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시장 안정과 주거 안정이라는 실질적인 결실을 볼 수 있다.
지금 전세제도는 역사적 소멸 과정에 있다. 가파른 월세화 흐름 속에 전세 공급이 원활하지 않기에 아주 작은 수급 변수만으로도 크게 요동칠 수 있는 구조다. 매매시장만 안정된다고 서민의 삶이 평온해지는 것은 아니다. 시장 안정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주거 안정일 수 있다. 후행적인 통계 수치보다 현장의 전세 매물 흐름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시의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전월세시장은 투기적 수요보다 실수요로 움직이는 시장이다. 그런 만큼 공급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마련이다. 아파트 공급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만큼 ‘패스트푸드형 주택’이라고 할 수 있는 오피스텔, 도시형 생활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
오피스텔 등은 젊은 세대가 아파트 대체재로 선호하고 있어 제때 공급된다면 주거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비아파트 공급 확대를 위한 대책을 내놓은 것은 시의적절한 일이다.
이 콘텐츠의 원문은 GOLD&WISE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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